- 자금 수요자도 공급자도 모두 외면…금융위, 전환금융 가이드라인 발표 5개월만의 민낯
- “은행·정부·투자자 모인 자리서 나온 냉정한 진단…세제혜택·자본규제 완화가 관건”
- 취급 실적만 늘리다 실제 감축효과 놓칠라…신용평가 연동에 우려 나와
- 오선아 경제전환팀 연구원 “수요·공급 불일치 확인…충분한 의견수렴 거쳐 제도 정교화해야”
전환금융을 실제로 쓰는 곳이 없는 이유는 일반 기업금융과 실질적으로 차별화되지 않아 자금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에게 이를 선택할 유인이 없는 상황이라는 지적이 금융권 실무자들 사이에서 나왔다. 액화천연가스(LNG) 투자 등 특정 자산의 포함 여부처럼 그간 논쟁이 됐던 ‘기준의 정교함’ 문제가 아니라, 기업들이 현장에서 활용할 이유가 부족하다는 것이 현장의 진단이다.
기후정책 싱크탱크 녹색전환연구소는 22일 ‘전환금융 가이드라인: 금융권 현장 쟁점과 제도개선 방향’ 브리프를 통해 이러한 내용을 공개했다. 해당 브리프는 지난 7월 14일 녹색전환연구소가 국내 주요 시중은행, 정부 부처, 국제 기관투자자 협의체 관계자 등 17명을 초청해 진행한 비공개 간담회 논의 내용을 담고 있다.
참석자 요청에 따라 소속과 명단은 비공개로 하되, 논의 내용은 언론과 업계에 공유하기로 뜻을 모았다.
전환금융은 철강·석유화학 등 고탄소 배출 산업과 기업이 저탄소·친환경 구조로 단계적이고 체계적인 전환(GX)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자금조달 방식이다. 한국에서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한 핵심 기후금융 수단으로 떠올랐다. 기후에너지환경부와 금융위원회 등은 관련 가이드라인 마련과 국제 포럼 개최 등을 통해 전환금융 생태계 조성에 나서고 있다.
이에 대해 참석자들은 정책자금 수준의 우대금리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기업 입장에서는 굳이 전환금융이라는 이름표를 달 이유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금융기관 입장에서도 동일한 자본을 투입해 얻는 수익성이 일반 여신보다 낮은 전환금융을 확대할 유인이 크지 않다고 꼬집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시기 시행됐던 수준의 강력한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전환금융 공급이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어렵다는 데는 참석자들이 한목소리를 냈다.
논의 과정에서 국내 전환금융 제도 설계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도 나왔다. 올해 2월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이 발표된 이후 정작 투자자와 금융기관과의 의견수렴 절차는 없었다. 한 은행권 참석자는 “정부가 상향식으로 기준을 만들어 ‘이 제도가 좋으니 쓰라’는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시장의 실제 수요를 만들어낼 수 없다”고 성토했다.
참석자들은 전환금융을 쓰는 기업에게는 세제혜택을, 이를 취급하는 금융기관에게 역시 세제혜택과 자본 규제 완화를 제공하는 등 수요자와 공급자가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유인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 내 ‘전환’ 개념과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상 ‘전환’ 개념이 혼재돼 발생하는 용어 혼선 ▲전환금융 적용의 한시성 및 국가 NDC와의 정합성 확보 방안 ▲업종별·기업 규모별 차등화된 감축 로드맵 필요성 등이 논의됐다. 특히, 전환금융 취급 실적을 신용평가 등에 즉시 연동할 경우 실제 감축효과를 관리하기보다 취급 규모만 늘리는 데 치중하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참석자들은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이 현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자금 규모 확대보다 제도의 신뢰성과 실효성을 뒷받침하는 기반 정비가 필요하다는 점에 뜻을 모았다. 무엇보다 시장의 실제 수요를 만들어내는 인센티브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더불어 정부가 석유화학 등 탄소고배출 섹터부터 업종별 감축 로드맵을 제시하고, 이를 뒷받침할 세제혜택과 자본 규제 완화 등 자금 수요자와 공급자 양쪽이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유인을 구체화하는 것이 우선 과제로 제안됐다.
오선아 경제전환팀 연구원은 “금융은 본질적으로 수익성과 자본효율성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만큼, 정책적 성격이 강한 기후금융을 시장 자율에만 맡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며 “지원 대상과 범위, 집행 기준을 명확히 규정하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마련 중인 전환금융 모범규준은 상당히 유연한 기존 가이드라인을 보완하는 최소한의 기준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면서도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를 확인한 만큼 제도와 지원방안을 정교화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자의 충분한 의견수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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