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색전환연구소 24일 ‘에너지복지를 주택 탈탄소 정책으로 재구성해야 하는 이유’ 발간
- 영국, 정권 바뀌어도 20년 쌓아온 주택 탈탄소 정책…‘따뜻한 주거계획’으로 결실
- 에너지복지·안보·녹색산업 하나로 꿴 주거계획…150억 파운드로 500만 가구 집 바꾼다
- 한국, 에너지복지 예산 4,940억 원 중 대부분 바우처…주택 효율 개선 여전히 뒷전
- 배보람 부소장 “에너지 위기 반복될수록 현금 지원만으로 버티는 구조의 한계는 더 선명”
기후정책 싱크탱크 녹색전환연구소가 24일 이슈브리프 ‘에너지복지를 주택 탈탄소 정책으로 재구성해야 하는 이유’를 발표했다. 영국이 지난 20여년간 에너지복지 정책의 축을 어떻게 바꿔왔는지 추적하고 한국 정책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한 이슈브리프다.
20여년 걸쳐 에너지복지 패러다임 바꾼 영국…‘따뜻한 주거계획’으로 결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영국 에너지 가격은 전쟁 이전보다 75% 이상 급등했다. 당시 영국 정부는 긴급 요금 지원을 시행하는 동시에 150억 파운드(당시 한화 약 24조 원) 규모의 주택 에너지 효율 개선 계획을 내놓았다.
여기에는 에너지 요금 청구서를 메워주는 방식만으로는 근본적인 원인이 바뀌지 않는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주택의 단열이 부실하고 화석연료 난방에 의존하는 구조가 그대로라면, 보조금은 매년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국은 그 구조 자체를 바꾸는 쪽으로 정책의 성격을 전환했다.
그 결과물이 2026년 1월 발표된 ‘따뜻한 주거계획(Warm Homes Plan)’이다. 이 계획은 2030년까지 최대 500만 가구의 주택 효율을 개선하고 100만 가구를 연료빈곤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기에 단열 개선, 히트펌프, 태양광·에너지저장장치(ESS) 보급을 하나로 묶어 ▲에너지 비용 절감 ▲건물 탈탄소화 ▲에너지안보 달성 등을 동시에 겨냥한 패키지로 설계됐다.
이 계획은 2024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핵심 공약으로 내건 것이다. 보수당 집권 시기부터 쌓아온 주택 효율 개선 정책의 흐름을 계승하면서도 한층 확장한 것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 방향은 유지됐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여기에는 단순 보조금 지원만으로는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에너지 가격이 아무리 올라도 집의 단열이 부실하고 화석연료 난방에 의존하는 구조가 그대로라면, 보조금은 매년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국은 그 구조 자체를 바꾸는 쪽으로 정책의 성격을 전환했다.
한편, 이러한 정책 방향 전환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영국은 2000년대 초 소득 대비 난방비 비중으로 에너지빈곤을 측정하는 ‘10% 원칙’을 세웠다. 이후 이 기준이 주택 성능 격차와 에너지 가격 변동에 따른 취약성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예컨대 빈곤층이 난방을 극단적으로 줄이면 10% 기준으로는 연료빈곤층으로 잡히지 않고, 반대로 에너지 가격이 치솟으면 중산층도 연료빈곤층으로 분류되는 역설이 생겼다.
영국 정부는 이에 주택의 에너지 효율 수준을 핵심 기준으로 삼는 ‘저소득·저에너지효율(LILEE)’ 지표로 전환했다. 에너지빈곤을 단순한 요금 문제가 아니라 주거·복지·에너지안보·산업이 얽힌 복합적 문제로 본 것이다. 올해 나온 따뜻한 주거계획은 이 인식의 연장선에 있다.
에너지 위기 때마다 바우처 예산 늘렸지만…화석연료 의존 구조 여전
반면, 같은기간 한국의 대응 방식은 달랐다. 한국의 에너지복지 정책은 에너지바우처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취약계층 가구에 냉·난방비를 직접 지원하는 방식이다. 2015년 겨울철 난방비 지원으로 시작했고, 여름철 냉방비 지원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예산도 꾸준히 늘었다. 2026년 에너지바우처 예산은 4,940억 원이다. 올해 중동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오르자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에너지바우처에 102억 원을 더 얹었다.
이슈브리프는 “에너지 빈곤을 대응하기 위해 급박하고 긴급한 상황에서 정책적 개입을 통해 에너지 가격 부담을 완화하는 노력은 물론 필요하다”면서도 “그러나 주택의 환경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정책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는 창문이 깨진 집의 창호를 개선하지 않은 채 냉난방비를 보조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역시 이를 인지하고 있다. 단열시공·창호·보일러 교체 사업이 2007년부터 이어져 왔고, 지난 윤석열 정부에서 중단됐던 민간 건축물 그린리모델링 이자 지원 정책도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국토교통부 사업으로 부활했다. 그러나 그 규모는 여전히 에너지바우처 예산의 발치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30년 이상 된 노후주택은 전국에 약 504만 가구다. 이는 국내 주택의 약 25.8%에 달한다. 또 지방 5개 광역시에서는 주택 4채 중 1채가 노후주택인 것으로 조사됐다. 에너지 가격이 오를 때 충격을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받는 것은 바로 이 주택들이다. 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에너지 위기가 올 때마다 보조금 규모를 늘리는 것 외에 선택지가 좁아진다.
“에너지복지를 주거·탈탄소·안보 정책으로 재설계해야”
이에 연구소는 이슈브리프를 통해 크게 세 가지를 제안했다. 에너지복지 예산을 바우처 중심의 사후 비용 보전에서 주택 에너지 효율 개선 쪽으로 균형 있게 재배분할 것 ▲에너지 취약계층 식별 기준을 소득뿐 아니라 주택의 물리적 성능과 지역별 에너지 접근 조건을 포괄하도록 고도화할 것 ▲에너지복지를 기후에너지 부처만의 과제가 아닌 국토교통부·보건복지부·지방정부가 함께 추진하는 공동 과제로 재설계할 것이다.
영국의 따뜻한 주거계획이 주목받는 것은 복지 정책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히트펌프 설치 목표를 세우면서 자국 제조 비율 70% 이상을 못 박았고, 18만 개의 녹색일자리 창출을 정책 목표로 함께 제시했다. 주거 개선이 에너지안보 강화와 제조업 육성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설계한 것이다. 보고서는 한국 역시 에너지복지를 이 같은 산업·안보 정책과 연계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슈브리프 저자인 배보람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은 “에너지 위기가 반복될수록 현금 지원만으로 버티는 구조의 한계는 더 선명해진다”며 “에너지복지는 따뜻하고 쾌적한 주택을 누릴 권리를 보편적으로 보장하는 데서 출발해야 하며, 이를 탈탄소 주거·에너지안보·녹색산업 육성과 함께 엮는 방향으로 재설계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슈브리프는 녹색전환연구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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