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색전환연구소·포지티브머니 ‘중립의 역설: 한국은행 담보체계의 탄소 편향과 개선 방안’ 공동 국제 연구 보고서 10일 공개
- 한은 담보의 53.1%가 화석연료·고탄소 채권…녹색·지속가능채권은 2%도 안 돼
- 녹색채권 헤어컷 8.7%로 일반채권의 2배… 3년 새 격차 벌어져
- 시중 녹색채권 중 담보 적격이 72.8%라던 한은… 실제론 화석연료만 늘고 녹색은 줄어
- “중앙은행이 화석연료 산업에 보조금 주는 셈”…근본적 개혁 필요
- 최기원 경제전환팀 팀장 “한은 담보체계 화석연료 금융지배력 강화하는 숨겨진 연결고리, 개선 논의 시작해야”
- 존 허버트 포지티브머니 선임연구원 “한은 담보체계, 고탄소 업종에 ‘암묵적 보조금’ 효과”
한국은행이 대출·결제 담보로 받아주는 채권을 분석한 결과, 화석연료·고탄소 업종 채권이 전체의 53.1%를 차지한 반면, 녹색채권은 2%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내 경제 생산의 2.6%밖에 안 되는 전력·가스 부문이 한국은행 회사채·공공기관채 담보의 21%를 차지해하는 화석연료 편향성 역시 확인됐다.
담보 가치를 깎는 비율(헤어컷)에서도 녹색채권은 평균 8.7%로, 일반채권(4.3%)보다 2배 넘게 더 깎이는 것이 확인됐다. 이러한 구조는 한국은행의 담보자산 자체를 기후리스크에 노출시키는 동시에 사실상 중앙은행이 화석연료·고탄소 산업에 보조금을 주는 것과 다름없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후정책 싱크탱크 녹색전환연구소와 영국에 기반을 둔 국제 싱크탱크 포지티브머니(Positive Money)는 이러한 내용이 담긴 ‘중립의 역설: 한국은행 담보체계의 탄소 편향과 개선 방안(영문명: Collateral Damage: Addressing Carbon Bias in the Bank of Korea’s Collateral Framework)’ 보고서를 한국시각으로 10일 공동 공개했다. 두 기관은 정태호 의원실(더불어민주당·서울 관악구을)을 통해 확보한 한국은행 자료를 기반으로 분석을 진행했다.
“한은 담보 53.1%는 화석연료·고탄소 업종…녹색·지속가능성은?”
한국은행은 금융기관에 대한 대출 및 차액결제를 이행하면서 금융기관으로부터 담보를 받는다. 그 규모가 2025년 기준 154조 원에 달한다. 담보로 잘 인정받는 자산일수록 조달비용이 낮아져 자금조달이 쉬워지는 만큼, 이같은 편향은 한국은행 담보 정책을 넘어 한국 금융시장 전반에 ‘화석연료 사업이 유리하다’는 신호로 작동한다. 이에 대해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먼저 두 기관이 한국은행 담보로 잡힌 회사채·공공기관채를 배출권거래제 대상 여부와 화석연료 사업 여부에 따라 분류했다. 2025년 말 기준 화석연료 및 고탄소배출 채권이 53.1%를 차지했다. 정작 녹색채권과 지속가능채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4.1%에서 2025년 1.9%로 오히려 줄었다.
이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벌어졌다. 2020년부터 2025년 사이 한국은행이 담보 인정 범위를 확대하면서 회사채·공공기관채 담보 총액은 4.5배 늘었다. 그 수혜는 화석연료·고탄소 부문에 집중됐다.
이런 쏠림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곳이 전력·가스 공기업 발행 채권이다. 전력·가스·수도·폐기물 부문은 2024년 국내 총부가가치 유발의 2.6%를 차지했다. 그러나 지난 3년간(2023~2025년) 한국은행에 담보로 잡힌 회사채·공공기관채 중에서는 21.0%를 차지했다. 특히, 한국전력 채권(이하 한전채)은 2025년 기준 회사채·공공기관채 담보 풀의 13.2%, 가스공사 채권은 4.8%를 차지했다. 두 기관의 채권만으로 전체 담보의 약 18%에 달했다.
중앙은행 담보로 인정받는 자산은 유동성이 높아져 발행비용이 낮아지는 효과를 누린다. 해당 산업 부문이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한전·가스공사 등 전력·가스 기업이 경제 기여도에 비해 국내 금융시장에서 유리한 조건을 누리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런 혜택을 받는 한전의 사업구조가 화석연료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전이 발전자회사를 통해 판매하는 전력의 상당 부분은 석탄·액화천연가스(LNG) 등 화석연료 기반이다. 2024년 기준 한국 전체 발전원에서 화석연료 비중은 56.9%이나, 한전과 발전자회사의 화석연료 비중은 이보다 높은 63.4%로 나타났다. 이러한 화석연료 편향은 이미 실제 투자자 이탈로 이어진 전례가 있다. 세계 3대 연기금에 속하는 APG는 한전이 인도네시아·베트남 석탄화력발전소 신규 건설을 강행하자 2020년 보유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
해외 투자자들이 이런 식으로 발을 빼는 사이, 국내에서는 오히려 한국은행이 한전채를 대거 끌어안는 정반대 흐름이 나타났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화석연료 가격이 폭등하자, 이를 감당하기 위한 한전채가 대량 발행됐다. 이 물량은 한국은행의 담보 확대 조치와 맞물려 그대로 담보로 흡수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한국은행이 한전채를 흡수함으로써 화석연료에 우호적인 금융환경을 조성하게 된 것이다.
담보로 인정된 한전채 3조 원 중 녹색채권은 단 126억 원(0.4%)에 불과했다.
녹색채권 헤어컷 유독 높게 적용… 2025년 8.7%로 전체 평균보다 2배 ↑
화석연료 채권이 중앙은행 담보로 잘 흡수되는 동안, 녹색채권은 정반대 대우를 받았다. 금융기관이 한국은행에 채권을 담보로 맡기면 그 가치를 안정성 등 기준에 따라 시장가치에서 일부 깎아서 인정해준다. 2025년 기준 이 할인 비율(헤어컷)이 일반채권은 평균 4.3%인 반면 녹색채권은 8.7%로 2배 넘게 더 깎였다.
예를 들어 100만 원짜리 채권을 담보로 맡기면 일반채권은 95만 7,000원으로 인정받지만, 녹색채권은 91만 3,000원으로만 인정받는 셈이다. 이 격차는 최근 들어 벌어진 것이다. 2022년에는 두 수치가 3.9%로 같았다. 그러나 이후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해 녹색채권의 헤어컷은 2023년 6.7%, 2024년 5.7%를 거쳐 2025년 8.7%까지 치솟았다.
담보로 인정될 때 가치가 더 많이 깎이니, 은행 입장에서는 굳이 녹색채권을 담보로 낼 유인이 크지 않은 셈이다. 이는 실제 활용도로도 이어졌다. 2025년 기준 시중에 나와 있는 채권 100개 중 한국은행에 실제로 담보로 맡겨진 것은 일반채권이 평균 6개꼴(5.8%)인 반면, 녹색채권은 2.4개꼴(2.4%)에 그쳤다. 이와 달리 한전·가스공사 채권은 100개 중 4개꼴(4.1%)이 담보로 활용돼, 녹색채권보다 1.7배 많이 쓰였다.
같은 편향은 담보로 편입된 금융기관 발행 채권(은행채·특수채)에서도 확인됐다.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특수은행과 시중은행이 발행한 채권을 분석한 결과, 지난 7년간(2019~2025년) 평균보다 탄소집약도가 높은(보유 자산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이 높은)고탄소 은행 채권이 한국은행 금융기관 발행 채권 담보의 73.0%를 차지한 반면, 저탄소 은행 채권은 24.7%, 녹색·지속가능채권은 1.2%에 불과했다.
“적격 72.8%”라던 한은… 실제 녹색채권 담보는 오히려 줄어든 까닭은?
이런 불리한 대우는 한국은행이 그동안 내세워 온 설명과도 배치된다. 한국은행은 2021년 기후변화 대응 차원에서 녹색채권을 담보로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별도 조치는 없었다. 그 대신 2023년 담보 대상 자산 전반을 확대하면서 녹색채권 상당수가 자연스럽게 그 안에 포함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설명한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후보 시절 국회 인사청문회 서면답변에서 “2025년 말 기준 국내에서 발행된 녹색채권(29조 1,000억 원) 중 72.8%가 한국은행 적격담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시중 녹색채권의 72.8%가 한국은행 담보가 될 자격을 갖췄다는 뜻으로, 사실상 녹색채권의 상당수가 담보체계에 편입되었다는 취지다.
그러나 보고서는 녹색채권이 여전히 한국은행 담보체계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자격이 있다고 실제 예치가 이루어지는 않고 있다.
담보 총량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화석연료·고탄소 채권도 함께 크게 늘면서 녹색채권과 지속가능채권의 회사채·공공기관채 담보 자산 내 비중은 2021년 4.1%에서 2025년 1.9%로 줄었다.
시중 녹색채권 중 담보로 흡수되는 비율은 지난 5년간(2021~2025년) 0.75~3.01% 수준에 그친 반면, 일반채권 중 담보로 흡수되는 비율은 4.38~5.82%에 달해 큰 차이를 보였다.
앞서 확인된 녹색채권에 대한 높은 할인율(헤어컷)도 이런 결과에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담보로 인정될 때 가치가 더 많이 깎이니, 은행 입장에서는 굳이 녹색채권을 담보로 낼 유인이 크지 않은 점이 지적됐다.
한은 담보 정책, 시장에 “화석연료 계속 해라”는 신호…개선안은?
한국은행 규정상 담보 채권의 할인율은 채권 종류·신용등급·잔존만기 3가지로만 정해진다. 명시적으로 녹색채권을 차별하거나 화석연료·고배출 산업 발행 채권을 우대하지는 않는다. 한국은행은 이를 근거로 산업을 가리지 않는 중립적 기준으로 담보체계를 운영해 왔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실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화석연료 채권은 유리하게, 녹색채권은 불리하게 취급되고 있었다.
중앙은행은 손실 최소화를 위해 적격 담보 대상을 좁게 유지하고, 그 안에서도 신용등급이 높고 신뢰성 있는 주체의 자산을 우대해왔다. 이런 구조 아래 국공채와 대기업 발행 채권에 대한 선호는 계속 유지됐다. 그 결과, 해당 채권 내에서의 화석연료 우위가 담보체계 내에서도 확대·증폭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중앙은행의 담보 풀과 채권시장을 기후리스크에 노출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미 해외 주요 중앙은행들은 담보체계에 내재된 이러한 탄소 편향(carbon-bias)을 인식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한 구체적 조치에 나서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2021년 지속가능성연계채권(SLB)을 적격담보로 수용한 데 이어, 2026년 하반기부터 비금융기업이 발행한 채권에 기후 관련 리스크를 반영한 ‘기후 팩터(climate factor)’를 적용해 담보 가치를 조정하기 시작했다. 2027년 말부터는 비금융기업 대출채권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해, ECB에 제공된 담보의 25% 이상이 기후 팩터의 적용을 받게 될 전망이다.
영국 영란은행 역시 담보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에 대해 2024년부터 에너지 효율 기준을 강화하고, 홍수 위험 지역 주택담보대출에 추가 헤어컷을 부과하는 등 물리적·전환 리스크를 담보체계에 반영하고 있다. 나아가 2026년 10월부터는 석탄 생산에서 수익을 얻는 기업이 발행한 채권을 적격담보에서 아예 배제하고, 회사채에 대해서도 기후 전환 리스크를 반영한 추가 헤어컷을 도입할 계획이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인민은행이 2018년 중기유동성지원창구(MLF) 담보에 녹색금융 채권을 포함하며 우대 지위를 부여한 선례가 있다. 이 조치가 녹색채권과 비녹색채권 간 금리 스프레드를 46bp(베이시스 포인트) 확대시켜 녹색채권에 우호적인 금융 환경을 조성한 데 기여한 것으로 분석됐다. 일본은행도 기후전환국채를 일반 국채와 동등하게 담보로 수용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행은 현재까지 담보체계에 기후·환경 요인을 반영하는 어떠한 조치도 도입하지 않은 상태다.
이에 녹색전환연구소와 포지티브머니 두 기관은 보고서에서 한국은행에 다음과 같은 9가지 조치를 제안했다.
1. 신뢰할 수 있는 녹색채권 시장 육성: 녹색채권 시장 자체의 성장을 정책적으로 뒷받침해야 함.
2. 담보 항목에 녹색채권 명시: 지금은 2023년 담보 확대의 부수 효과로 일부 녹색채권이 포함됐을 뿐, 별도 카테고리가 없음. 명시적 항목으로 만들어 금융권에 분명한 신호를 줘야 함.
3. 녹색국채, 일반국채와 동등 대우 필요: 정부가 2026년 6월 발행 계획을 밝힌 녹색국채를 일반 국채와 동등하게(또는 우대하여) 모든 담보 풀에서 인정해야 함.
4. 과학적 근거 기반 녹색채권 기준 마련: 발행사 전체의 환경 정보를 반영해, ‘녹색’이라는 이름만 붙이고 실제로는 화석연료 사업을 보조하는 그린워싱을 막아야 함.
5. 녹색 통화안정증권(MSB) 발행: 국채·통안채가 전체 담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데도 녹색 라벨이 붙은 통안채는 전무함. 일부 통안채를 녹색으로 발행하면 세계 최초 사례가 될 수 있음.
6. 기후·환경영향 기반 담보 자격·할인율 조정: 지금은 채권의 종류·신용등급·잔존만기로만 정해지는 할인율(헤어컷)에 기후·환경 리스크 평가를 반영해야 함.
7. ‘심각하게 유해한’ 발행자 배제: 화석연료 신규 확장 등에서 수익을 얻는 발행자의 채권은 담보 자격에서 아예 제외해야 함. 영란은행이 2026년 10월부터 석탄기업 채권을 담보에서 배제하기로 한 사례를 들며, 한국은행이 국제적 흐름에 뒤처지고 있다고 지적함.
8. ‘기후 팩터’ 도입: 위험도뿐 아니라 환경영향 지표까지 반영해 할인율을 자동 조정하는 계수를 개발해야 함. 보고서는 유럽중앙은행(ECB)이 2026년 하반기부터 ‘기후 팩터’를 도입했다는 점을 언급함.
9. 담보 풀 기후·환경 정보 정기 공시: 담보로 잡힌 채권 중 녹색·고탄소 비중, 탄소배출 관련 지표 등을 국제 기준에 맞춰 정기적으로 공개해야 함.
보고서 저자인 최기원 녹색전환연구소 경제전환팀 팀장은 “한국은행 담보체계는 화석연료의 금융지배력를 강화하는 숨겨진 연결고리”라며 “구조적으로 녹색을 홀대하고 화석연료를 우대하는 양상이 실증적으로 드러난 만큼 담보체계 개선을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보고서 저자인 조 허버트(Joe Herbert) 포지티브머니 선임연구원은 “한국은행 담보체계에서 고탄소 업종이 누리는 우대 조치는 해당 자산에 대한 수요를 늘리고 고탄소 기업들이 더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하는, 암묵적인 보조금 역할을 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온실가스 배출은 전 세계적인 기후위기를 초래하고 있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 사태는 한국이 얼마나 시급하게 탈탄소화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추진해야 하는지 보여주었다”며 “ 한국은행은 이러한 노력을 방해할 것이 아니라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공동 보고서는 한국어본과 영문본으로 발행돼 녹색전환연구소 홈페이지와 포지티브머니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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