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 51.4% “기후위기, 자산에 영향”…농어업 넘어 부동산·금융 역시 영향
저효율 건물 ‘임대 금지’ 등 강력 규제도 59.3% 찬성... 보수층 역시 ‘탄소세’ 지지
재해 보상보다 ‘농민기본소득’ 등 상시 안전망 선호... 농촌 지역일수록 찬성 우세
올들어 발생한 215건의 산불로 지금까지 여의도 2.5배 만한 면적(730ha)이 불타는 등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가 갈수록 빈번하고 심각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기후위기가 내 자산 가치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 유권자가 절반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변화가 주거 안정과 재산권을 위협하는 문제로 부상하면서 에너지 저효율 건물 임대 금지 같은 강력한 규제와 탄소세 도입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국민 51.4%, “기후가 자산 가치에 영향 미쳐…기후리스크 현실화”
1일 기후정치바람에 따르면 ‘기후위기가 내 자산 가치에 영향을 미쳤다’는 응답자가 51.4%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정치바람이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난 2월 전국 17개 광역시도 만 18세 이상 1만 7,86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다.
기후위기에 영향을 받은 자산 종류는 ▲농·어업, 제조업, 자영업 등 사업소득이 37.9%로 가장 많았다. 이어 ▲건물, 주택 등 부동산(22.5%) ▲주식, 펀드 등 금융자산(14.3%) ▲월급, 수당 등 근로소득(9.9%)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농·어업 비중이 높은 도(道) 단위 지역에선 사업소득 응답률이 높았고, 특·광역시에선 부동산과 금융자산을 꼽은 응답자가 비교적 많았다.
자연에 의존하는 1차산업뿐 아니라 부동산, 금융자산도 영향 받았다는 응답이 나온 건 기후변화가 실질적이고 일상적인 위협이 됐다는 뜻이다. 지난해 3월 영남권 초대형 산불로 주요 보험사의 상반기 순이익이 급감하고 주가가 하락한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실제로 이번 설문에선 적잖은 유권자가 ‘지난 1년간 거주지에서 기후재난이 발생했다’고 답했다.
가장 많이 경험한 재난은 폭염이 59.4%(복수응답)로 1위였고, 산불(16.2%)과 가뭄(15.5%), 홍수 및 침수(14.1%)가 비슷한 응답률을 보였다. 산사태는 3.2%를 기록했다. 지역별로는 영남권에서 산불 피해 응답률이 30.6~55%로 매우 높았고, 광주와 충남은 홍수(각각 43.6%, 32.1%), 강원은 가뭄(37.5%)을 지목한 경우가 많았다. 영남 산불과 7월 광주·충남에 쏟아진 극한호우, 기우제까지 지낼 만큼 심각했던 여름철 강릉 가뭄을 반영하는 결과다.
건물 부문 ‘지원’뿐 아니라 ‘규제’도 높은 공감대
지난해 소방청이 발표한 온열질환 구급 통계를 보면, 환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은 집(20.3%)이었다. 폭염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주거 환경 개선이 필수적이란 뜻이다. 설문에서도 ‘정부와 지자체가 기후재난에 취약한 주택 기준을 정해 냉난방과 단열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에 69.4%가 찬성했다.
현재 많은 지자체에서 농어촌주택이나 저소득층, 도시재생지역 주민 등 특정 계층의 노후 건물 집수리를 지원하고 있는데, 이를 ‘모든 노후 건물’로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63%가 찬성했다.
융자나 보조금 지원 같은 ‘당근’뿐 아니라 규제를 강화하는 ‘채찍’도 호응도가 높았다. 건물이나 주택의 에너지 효율을 평가해 낮은 등급을 받은 건물은 임대를 금지하는 정책의 도입에 대해 ‘찬성’이 59.3%로 반대 의견(20.4%)을 3배 가까이 웃돌았다. 지역과 이념성향, 지지정당에 관계없이 모두 찬성 의견이 반대 의견을 압도했다.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은 기후위기 대응뿐 아니라 세입자의 에너지 비용 부담을 줄이는 민생 정책 차원에서 이 같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선 여전히 주거와 관련해 규제보단 지원 정책에 무게 중심이 쏠려 있다.
침수 가능 지역의 건물주에게 침수 방지 시설(차수막) 설치를 의무화하자는 주장에도 79%가 찬성했다.
다만, 주거 환경 개선 지원이나 집주인·건물주의 의무 강화와 관련된 모든 문항에서 자가 응답자보다 비자가 응답자(세입자)의 찬성률이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점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기후재난 취약 주택의 냉난방·단열 지원에 자가 응답자는 71.7%가 찬성한데 비해 비자가 응답자는 65.1%가 찬성했다. 저효율 주택 임대 금지도 비자가(찬성 56.3%) 보다 자가(60.9%) 응답자의 찬성률이 더 높았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기후재난에 맞서 주거안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는 모두 동의하지만, 이런 제도가 임대료 인상 등 자칫 세입자 부담으로 전가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촌 지역, 재해 보상보다 농민기본소득 우선 시행 필요
한편, 경기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최근 기후재난으로 건강·재산 피해를 입었을 때 보상받을 수 있는 ‘공공기후보험’을 도입하고 있다. 이 제도 도입과 관련해 모든 지역에서 높은 찬성률이 나왔다. 제주(77.3%)와 전남(76.6%), 광주(74.5%)는 물론, 찬성률이 가장 낮게 나온 서울(67.5%)과 대구(69.9%)도 찬성 의견이 반대 응답률(최대 14.6%)을 크게 웃돌았다.
농업은 기후변화로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받는 분야인 만큼 농민 소득 감소에 대처할 정책이 시급하다. ‘농업재해보험 등 재해 보상 정책’과 ‘농민기본소득 등 농민 소득보전 정책’ 중 우선순위를 충청·전라·경상도민에 물은 결과 농민기본소득을 우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앞섰다.
특히, 도시보다 농촌 성격이 강한 지역일수록 기본소득이 우세하게 나타났다. 기후재난이 점차 극단적이고 복합적인 양상을 띠는 만큼 특정 재해에 대한 한정적 보상 대신 상시적이고 보편적인 소득 안전망을 기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기후재난을 최소화하고 예방하는 데는 돈이 든다.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탄소세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이에 대해 응답자 63.9%는 찬성한다고 답했다. 대체로 세금에 부정적인 보수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61.2%의 찬성률이 기록됐다.
신근정 로컬에너지랩 대표는 “기후위기 대응은 더 이상 개별 피해를 보상하는 수준을 넘어, 소득과 재정을 함께 설계하는 문제로 전환되고 있다”며 “농민기본소득과 탄소세 찬성 요구는 그 변화의 방향을 보여준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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